전 세계의 밤을 기록합니다GLOBAL HORROR ARCHIVE
미간행MIDNIGHT GALLEY
내 서재 0

하루 일과

nyc
nyc

뉴욕시

에밀리아 존은 사람들로 가득한 회의실에 앉아 밖을 동경한다. 단조롭게 이어지는 연구원의 말이 머릿속을 긁어댄다. 손안에서 제니스 코퍼레이션 로고가 찍힌 펜을 만지작거리며 창밖을 바라본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이 구월의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존?” 귀에 익은 소리가 들린다.

“존 씨?” 앤더슨 박사의 목소리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뚫고 들어와 에밀리아의 주의를 돌린다. 회의실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조용해진다.

“이사회가 우려하는 건 예산이 아닙니다, 앤더슨 박사님.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데 필요한 돈은 얼마든지 쏟아부을 겁니다. 이런 전망도 다 좋지만, 보여줄 성과도 없는데 백지수표를 써드리지는 않을 거예요. 다음 분기 말까지는 성과를 기대하겠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연구비도 일자리도 잃게 되실 겁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차갑고 날카로운, 조용한 권위가 실려 있다.

“물론입니다, 존 씨.” 과학자는 소지품을 챙겨 대기실로 터벅터벅 나가더니, 다음 연구원에게 “들어가서 잘해보세요”라고 말하며 안으로 들여보낸다.

에밀리아는 회의 진행에 주의의 삼분의 일만 기울인 채 주기적으로 창문과 시계를 번갈아 보며, 퇴근할 시간이 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여덟 번째 검토가 이어지자 회의에 싫증이 난 그녀는 왼쪽 귓불을 잡아당겨 비서에게 신호를 보낸다.

“서른두 쪽의 그래프를 보시면, 아홉 명의 피험자 중 세 명이—”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박사님. 존 씨께 다른 일정이 있어서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에밀리아의 비서 조지프가 말하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두 사람은 대기실을 빠르게 지나 엘리베이터 문 앞으로 향한다. 에밀리아가 서서 기다리는 사이 조지프가 따라와 손을 뻗어 위쪽 화살표 버튼을 누른다. 둘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등 뒤로 문이 닫히자, 에밀리아가 과장되게 한숨을 내쉰다.

“저 사람들이 계속 웅얼거리는 걸 더 듣고 있어야 했다면 내 귀를 찔러버렸을 거야.” 그녀가 코웃음을 치며 손을 내민다. 조지프는 주머니에서 그녀의 휴대전화를 꺼내 펼쳐진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오늘 회의는 꽤 길었죠?”

그녀는 엄지로 화면을 쓸어 달력을 찾아 누르며 조지프를 돌아본다. “길다고 할 수도 있겠지. 난 개인적으로 생기라고는 없었다고 하고 싶네. 여행 떠나기 전에 처리해두고 싶었을 따름이야. 그 애가 감당해야 할 일이 줄어들 테니까.”

그녀는 오늘 일정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젓는다. “오후 약속은 전부 비우고, 내가 돌아온 뒤로 다시 잡아줘.”

“네. 여행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로드리게스 씨가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확인하셔야 할 파일을 보냈다고 하더군요. 중요한 일 같았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에밀리아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밖으로 나서며 건성으로 “응” 하고 대답한다.

에밀리아가 널찍한 사무실로 들어간다. 벽을 따라 짙은 마호가니 선반이 늘어서 있고, 그 위에는 그녀가 여러 해에 걸쳐 모은 책과 자잘한 장식품들이 가득하다. 문 옆에서 신발을 벗어 던지고 책상으로 걸어가자 두꺼운 카펫이 발을 살짝 감싼다. 넓은 가죽 의자에 털썩 앉아 책상 위로 발을 올리고 맨 위 서랍에서 가느다란 담배 한 개비를 꺼낸다.

몇 시간만 더 있으면 돼.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 길게 한 모금 빨아들인다.

담배를 다 피운 그녀는 신음하듯 소리를 내며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다른 손으로 컴퓨터 마우스를 흔든다. 메신저 앱을 클릭해 열고 로드리게스 씨가 보낸 los-lagos-incursion.zip이라는 파일을 내려받기 시작한다.

책상 위의 전화가 크게 삑삑거린다. 짜증이 난 에밀리아가 응답 버튼을 누른다.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뒤부아 씨가 삼 번 회선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중요한 일이라고 하십니다.” 비서가 마지못해 말한다.

“누구?”

“레스타 뒤부아 씨요. 전에 통화하셨던 유럽연합 담당 변호사—”

“지겨운 인간이네. 연결해줘.”

삼 번 회선의 표시등이 빨갛게 켜지고, 에밀리아가 전화를 받는다. 제니스 코퍼레이션의 변호사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프랑스어 법률 용어를 줄줄 늘어놓고, 그녀는 건성으로 귀를 기울인다. 화제가 인체 실험 관련 규정으로 넘어가자 에밀리아의 주의가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말을 들으며 메모장 여백에 낙서한다. 스마일러의 얼굴과 데스모스의 날개가 달린 하운드를 작고 귀여운 모습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시면 저희가 크게 곤란해집니다… 제 말을 듣고는 계십니까?”

“네, 듣고 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드릴 답은 없네요. 어떻게든 되게 만드는 게 그쪽 일이잖아요. 방법을 찾아내세요. 못 하겠다면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테니까.” 그녀는 갑자기 통화를 끊고 담배를 한 개비 더 꺼내 불을 붙인 뒤 느릿느릿 창가로 간다. 그녀가 보기에 도시는 작았고, 사람은 너무 많았다.

파일 다운로드가 끝나자 컴퓨터에서 부드러운 알림음이 울린다. 그녀는 책상으로 돌아가 의자에 몸을 밀어 넣는다. 문서들을 빠르게 스크롤해 지나친 뒤 MP4 파일을 연다.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하면서 창 하나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영상은 텅 비고 허물어져 가는 창고 안을 걸어가는 두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천장에 난 구멍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와 실내 곳곳을 밝힌다.

화면 속 남자는 보통 키의 중년으로, 밝은 초록색 블레이저에 때가 탄 메츠 모자와 찢어진 청바지를 걸치고 있다. 촬영되고 있는 남자가 스페인어로 “이쪽이야, 친구. 바로 이 뒤쪽이야”라고 짧게 말하며 촬영자를 앞으로 이끈다.

두 사람은 창고 주 공간의 뒤쪽 모퉁이로 다가간다. 남자가 때가 낀 벽돌 벽을 가리킨다. “이겁니다.” 카메라가 벽에 초점을 맞추자 벽 일부가 살짝 일그러진다. 촬영자가 작은 잔해 조각을 집어 벽을 향해 던진다. 조각은 아무런 저항 없이 벽을 통과한다.

“보상금이 있다고 했지?” 촬영자가 남자 쪽으로 돌아서서 처음으로 입을 연다. “이 얘기는 누구한테 들었지?”

“걱정 마, 친구. 그냥 마을 애들 몇 명이었어.”

촬영자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남자를 향해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꺼내 들고 몸통에 두 발을 쏜다. 남자는 비틀거리더니 신음 사이로 끊긴 욕설을 뱉으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촬영자는 그 몸을 벽까지 끌고 가더니, 다소 힘을 들여 들어 올려 벽 너머로 밀어 넣는다.

촬영자는 벽에서 몇 걸음 물러난 뒤 왼손 엄지를 치켜든다.

영상이 끝나자 에밀리아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오른다. 그녀는 메신저 앱을 띄워 로드리게스 씨에게 답장을 보낸다.

아이들도 처리해요… 뒤탈이 없도록.

-Z

그녀는 책상 서랍에서 접착식 메모지를 꺼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우리가 찾던 게 바로 이거야. 몇 번 클릭해 파일들을 다시 띄운 뒤 메모지를 화면에 붙이고 모니터를 끈다. 에밀리아가 인터폰 버튼을 누르고 말한다. “나 일찍 퇴근할게, 조지프.” 잠깐 시간이 흐른 뒤 사무실 문이 열리고 조지프가 코트와 가방을 손에 들고 들어온다.

에밀리아의 아파트는 제니스 코퍼레이션 본사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져 있지만, 교통 체증 탓에 차로 가는 데는 마땅히 걸려야 할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조지프가 펜트하우스의 잠금을 풀고 문을 연다. “여행 잘 다녀오십시오. 돌아오시면 뵙겠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닫는다.

재킷을 벗고 구두에서 발을 빼자 에밀리아의 몸이 이완된다. 그녀는 무미건조한 복도를 지나 그만큼이나 밋밋한 주방으로 걸어가며 조리대 위에 가방을 던져놓는다. 냉장고를 연다. 똑같은 모양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놓인 샘물 유리병 열두 개 말고는 텅 비어 있다. 그녀는 한 병을 꺼내고 냉장고를 닫는다. 뚜껑을 돌려 따고 병을 입술에 댄다. 물은 차갑고 벤즈알데하이드 냄새가 난다. 주방에서 침실로 느긋하게 걸어가며 몇 차례 길게 들이켠다.

그녀는 몸에 붙는 검은색 슬랙스와 무채색 꽃무늬 블라우스를 벗어 방구석의 작은 고리버들 바구니에 던진다. 욕실로 이동하며 남은 물을 마저 마신다. 에밀리아는 거울을 응시하다가 세면대 아래 서랍에서 메이크업 리무버 티슈를 꺼낸다. 얼굴을 닦아낸다. 파운데이션과 아이라이너, 립스틱이 흐릿한 줄무늬로 번졌다가 사라진다. 얼굴 옆면의 긴 흉터에서 손을 멈추고, 그것이 어떤 위안이라도 주는 듯 손가락으로 가볍게 따라 쓸어본다.

에밀리아가 샤워실에 들어가 장식이 화려한 손잡이를 돌리자 여러 방향에서 찬물이 쏟아져 나온다. 날카로운 감각이 즉각 밀려든다. 그녀가 꼼짝 않고 서 있는 동안 하루의 스트레스가 녹아 사라진다. 아주 잠깐이나마, 세상이 마침내 조용해진다.

샤워를 마친 그녀는 침실로 돌아온다. 에밀리아는 검은색 면바지와 몸에 꼭 맞는 셔츠를 찾아낸다. 분홍색 실크 잠옷 한 벌을 꺼내 침대에 펼쳐놓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얼굴을 찡그린다. 드레스룸으로 들어간다. 비슷하면서도 뚜렷이 다른 두 가지 옷차림이 방을 정확히 양분하고 있다. 튼튼한 검은색 부츠 한 켤레를 꺼내 신고 끈을 묶는다. 나오면서 새하얀 실험복을 집어 든다. 에밀리아는 욕실로 돌아가 수납장에서 초를 꺼내 불을 붙이고 욕조 근처에 놓는다. 수도꼭지를 틀고 김이 피어오르는 뜨거운 물을 욕조에 받기 시작한다. 욕조가 가득 차자 불을 끄고 방을 나선다.

에밀리아가 티 없이 깨끗한 현대식 거실에 들어선다. 유리와 강철, 옅은 색의 직물들이 세심한 의도에 따라 정밀하게 배치되어 있다. 흠잡을 데 없이 말끔한 그곳은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이라기보다 주의 깊게 관리되는 공간에 가깝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소파에 앉아 전화를 건다.

“단테 피자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세요. 올리브랑 양파 피자 라지 한 판 주문할게요.”

“늘 드시던 걸로, 주소도 평소와 같은 곳이죠, 존 씨?”

“네.”

“알겠습니다. 삼십–사십 분 정도 걸릴 거예요.”

에밀리아는 통화를 끝내고 실험복을 걸친 뒤 주방의 수납장으로 향한다. 작은 약병을 집어 뚜껑을 누르면서 돌려 연다. 안에는 알약과 캡슐이 뒤섞여 있다. 생체 리듬에 따른 신체의 요구를 덜어주기 위한 혼합물이다. 그녀는 내용물을 입안에 털어 넣고 힘껏 삼킨다. 날카로운 덩어리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시간이 몇 분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가방에서 담배 한 개비를 찾아 불을 붙이고, 그림 같은 전망이 펼쳐지는 커다란 창으로 걸어가 아래쪽의 분주한 도시를 바라본다. 몇 분이 지나자 그녀가 복용한 혼합 약물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머리가 맑아지고, 통증이 사라진다. 에밀리아는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 시각을 확인하고 가까이 있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다. 그녀는 재빨리 움직이며 현관문으로 가는 길에 조리대 위로 휴대전화를 던져 놓는다. 손잡이로 손을 뻗지는 않는다. 대신 몸을 돌려 아파트 안쪽을 향한 채 그저 기다린다.

셋

둘

하나

그녀 주위의 세계가 갑자기 뒤바뀌고 현실이 일그러진다. 추락하는 감각이 에밀리아를 압도하는 가운데 만화경 같은 색채가 그녀를 집어삼킨다.

에밀리아가 눈을 뜨자 그곳은 실험실 14다. 그녀 앞의 CNC 기계 안에는 커다란 석판이 놓여 있고, 그 표면에는 그녀의 이름이 아주 작은 글씨로, 언제나 두 개씩 짝을 이루어 격자무늬를 형성하며 새겨져 있다.

“두 분이 마련하신 방식은 정말 기발합니다, 선생님.” 조수 데이비드가 클립보드를 손에 들고 그녀 뒤에 서 있다. 에밀리아는 석판에 새겨진 글자들을 손가락으로 쓸어 본다. 베이지색 돌에는 수년에 걸친 이동이 기록되어 있다.

“이빨 파편을 이용해 과거로 돌아가 자신과 자리를 바꾸다니…… 누가 그런 생각을 했겠습니까?”

“나지, 데이비드. 그리고 그걸 이루는 데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이 걸렸고……” 그녀가 잠시 생각에 잠기면서 목소리가 잦아든다. 데이비드가 헛기침을 하자 그녀는 상념에서 벗어나 그를 돌아본다.

그가 옅은 미소를 짓는다. “이동은 어떠셨습니까, 선생님?”

“한시가 급했어. 그곳은 숨이 막히거든.” 그녀는 데이비드를 지나쳐 벌써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그 여자는 여기서 침입장을 추적할 방법을 알아냈나?”

“네, 선생님. 존 씨가 설계도를 가지고 있고, 프론트룸에서 그대로 재현하겠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 문 앞에 멈춰 선다. 에밀리아는 데이비드가 ‘위’를 가리키는 버튼을 누르기를 기다린다.

“그럼 내 귀염둥이는?”

“실험체 348이 깨어나 먹이도 먹고 겉보기에는 건강하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기쁘실 겁니다. 유일한 문제는 날개가 여전히 흔적 기관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딩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대화가 끊기고,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간다. 데이비드가 버튼을 누르고, 두 사람은 몸을 돌려 정면을 바라본다.

“또 실패라니, 참 아쉽군…… 다시 시도해야겠어.” 그녀의 얼굴은 조각상처럼 아무 변화가 없다.

엘리베이터가 웅웅 소리를 내며 올라가기 시작한다.

잠시 뒤 데이비드가 에밀리아를 돌아본다. “집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녀의 널찍한 사무실이 나타난다. 가구들은 단색 대리석을 깎아 만들었으며 화려한 금빛 세부 장식이 새겨져 있다. 뒤쪽 유리 벽 너머로는 레벨 11의 광활한 풍경이 눈이 닿는 곳까지 펼쳐져 있다.

에밀리아가 희미하게 미소 짓는다.

“아니.” 그녀가 말한다. “해야 할 일이 있어.”

A wide shot of a vast city skyline
A wide shot of a vast city skyline

광대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담은 와이드 숏

작성자

DrAkimoto

PASS THE STORY ON

이 밤을 함께 읽어요.

XThreadsTelegramWhatsApp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