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이 있다면 네게 키스할 텐데
⚠️ 내용 경고 ⤴
'일어나.'
날카로운 목소리에 케이타는 선잠에서 깜짝 놀라 깨어났다.
왜 잠들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일하고 있었다… 책상에서… 사무실에 있는.
그런데 왜 갑자기 곰팡내가 나는 어두컴컴한 복도에 있는 걸까?
게다가 왜 이렇게 흐릿하지?
다시 목소기로 돌아가 보자.
딱딱하고, 거의 네모나다고 할 만한 목소리에는 은근한 혐오가 가득해서, 사실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는 점마저 잊을 지경이었다.
'일어나.' 목소리가 되풀이했다.
달리 뭘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던 케이타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의식을 잃었던 이유가 머리를 부딪쳤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즉시 떠올랐고, 곧바로 몸이 휘청하며 벽에 부딪쳐 또다시 뇌진탕을 입었다.
이쯤 되니 걱정스러운 반복이었다.
몸이 튕겨 나왔지만, 수영장용 폼 막대처럼 생긴 굵고 파란 팔 하나가 재빨리 그를 붙잡았다.
'이제 내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됐으니 말인데.' 낯선 이가 말했다. '몸이 좀 나아지면, 저쪽에 강제 노클립 지점이 있어. 레벨 11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손으로 가리켜 주고 싶지만 다른 팔은 수명이 다해서. 그래도 카메라 렌즈로 왜곡한 것 같은 저 벽은 못 알아볼 수가 없지.'
어지럽게 흔들리던 케이타의 시야가 고통스럽게 초점을 되찾자, 그는 정말로 어안 렌즈처럼 불룩하게 튀어나온 베이지색 벽을 바라보았다.
'또 넘어지지 않도록 좀 해 봐.' 낯선 이가 손을 놓으며 말했다.
케이타는 간신히 두 발로 버티고 서서 뒤를 돌아보았고… 뭘 본 거지?
그는 그 낯선 이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상대는 키가 크고 몸집이 넓은, 얼굴을 찌푸린 허스크였다.
하지만 그 외모에서 언데드라는 점은 아마 가장 덜 이상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얼굴 대부분은 피부가 벗겨져, 피투성이 살점 사이사이로 뼈가 드러나 있었다.
진홍빛 화상 자국이 한쪽 눈을 가로질렀고, 그 눈은 반대편의 길게 벌어진 커다란 틈에 비하면 유령 같은 작은 점으로 보였다.
옷차림은 수수하고 실용적이었지만, 다소 무시무시한 금속 장치가 양팔을 감싸고 있었고, 구불구불한 고무관이 한 쌍의 의수를 가슴의 바인더처럼 보이는 물건에 연결하고 있었다.
케이타를 칭찬하자면, 달아나거나 비명을 지르는 식으로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오히려 상대가… 묘하게 매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달까?
그는 어떻게 말을 꺼낼지 생각했다.
'넌 누구야?'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허스크가 대답했다. '넌 이제 가야 해. 뇌진탕도 있으니 일을 좀 쉬는 게 좋겠어. 뇌에 멍이 들면 생산성이 떨어지거든.'
'가기 싫다면?' 케이타가 거의 따지는 듯한 어조로 재빨리 말했다.
낯선 이는 한숨을 쉬었다.
정신으로 전해진 그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케이타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다 천천히 잦아들었다.
'좋아.'
파란 낯선 이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갔다.
케이타는 보조를 맞추려면 가볍게 뛰어야 했다.
'하지만… 헉… 아직… 헉… 네 이름도 모르는데!' 케이타가 숨을 헐떡이는 틈틈이 말했다.
허스크가 갑자기 멈춰 섰고, 케이타는 그 등에 세게 부딪쳐 둘 다 바닥에 넘어졌다.
'나는… 윽… 카탈리스트야.' 낯선 이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언바운드에 맞서는 혁명가지. 들어 봤을지도 모르겠네. 아니면 못 들어 봤을 수도 있고. 내가 어떻게 알겠어. 넌?'
'나는 케이타야.' 케이타가 명랑하게 대답했다.
'멋지네.'
둘은 잠시 바닥에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래서, 케이타?'
'응?'
'일어나는 것 좀 도와줄래?'
둘은 꽤 오랫동안 걷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시간만의 문제였다. 둘 중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으니까.
사람이 사는 레벨들 사이로 끝없이 펼쳐진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수없이 걸어 다니는 데 익숙한 카탈리스트에게 며칠에 걸친 여정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거기에 비하면 이 정도는 각주에 불과했다.
케이타에게는 새로 만난 파란 동행 위로 넘어지고 나서 고작 오 분쯤 지난 것 같았다.
누군가와 수다를 떨다 보면 정말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나는 질문을 모조리 누군가에게 던지다 보면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 케이타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카탈리스트는 아무 불평 없이 장단을 맞춰 주면서도, 웬만한 정치인처럼 확답을 피하며 날아오는 질문마다 완벽하게 피해 갔다.
'넌 별로 말을 안 해 주네.' 케이타가 말했다.
'그리고 넌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카탈리스트가 대답했다.
케이타는 실수로 자기 신발에 걸려 넘어져 하마터면 또 뇌진탕을 입을 뻔했다.
다행히 카탈리스트는 반사 신경이 빨라 그를 품으로 받아 냈고, 그의 머리가 환각제를 먹은 쥐처럼 빙빙 도는 사태를 막아 주었다.
'제발 좀 더 조심해.' 카탈리스트가 차분하게 말했다.
케이타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올랐다.
'미안.' 그가 멋쩍게 말했다.
케이타는 천천히 그 품에서 내려와 균형을 되찾았다.
그러고는 무뚝뚝한 파란 지인과 곧바로 다시 50고개를 시작했다.
케이타는 반쪽짜리 대답을 하나씩 들을 때마다 상대가 점점 더 편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둘은 가구가 어지럽게 널린 구역에 도착했다.
옷장과 오토만, 소파 등이 있었다.
케이타는 그 사이에서 더블 침대를 발견하고는 카탈리스트의 소매를 잡아당겨 보여 주었다.
'저기서 쉬자.'
카탈리스트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러고 싶으니까.' 케이타가 간단히 대답했다.
카탈리스트는 잠시 생각했다.
계속 이동하면서 경계를 늦추지 말자고 하고 싶었지만, 한동안 걷기도 했으니 케이타에게 휴식이 필요하겠거니 했다.
'알았어, 그러자.'
케이타는 웃으며 카탈리스트를 침대로 끌고 갔다.
꽤 편안한 침대라는 건 카탈리스트도 속으로 인정했다.
거기서도 케이타는 계속 질문했고…
또 질문했고…
가끔은 두서없이 떠들기도 했고…
지치는 기색이라곤 없어서, 이번에는 카탈리스트 쪽에서 질문을 던졌다.
'피곤한 줄 알았는데?'
케이타는 몇 초 동안 말이 없다가 피식 웃었다.
'쉬고 싶다고 했지, 피곤하다고는 안 했는데.' 케이타가 능청스러운 어조에 그만큼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카탈리스트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 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야.'
하지만 물어볼 질문이 바닥나자, 케이타는 정말 잠들었다.
침대에는 머리를 벨 베개도 있었지만, 그는 카탈리스트의 무릎에 자리를 잡았다.
케이타의 파란 동행은 움직이거나 그를 깨우면 무례할 것 같아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리하여 카탈리스트는 새로 사귄 지인이 무릎 위에서 평화롭게 잠든 동안 최대한 꼼짝 않고 앉아,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을 경계하고 있었다.
휴식을 마치고 깨어난 케이타는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며, 몇 번 눈을 깜빡이다 천천히 눈을 떴다.
'다시 안녕.'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고 있던 그를 깨웠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뭔가 달라진 점이 있었다.
아까는 은근하면서도 거칠었다.
그런데 침대에 누워 듣는 지금의 목소리는 그보다 부드러웠고, 그 속에 담긴 뜻을 알아내기도 어려웠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허스크 동행과 눈이 마주치자 케이타는 미소를 지었다.
'날 두고 갈 줄 알았어.' 케이타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카탈리스트의 무릎에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켰다.
'그랬으면 잔인했겠지, 안 그래?' 허스크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케이타는 작게 웃었다.
'그랬을 것 같네.'
'그랬을 것 같다고?'
케이타는 카탈리스트의 질문을 그냥 무시했거나, 어쩌면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허스크 친구에게 곰팡내가 나는 밋밋한 복도들을 계속 탐험하자고 했다.
그 복도들은 케이타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썼던 기사 몇 편을 떠올리게 했다. 지루하고 별다른 맛도 없었다.
케이타가 막 침대에서 두 걸음 떨어지려던 순간, 카탈리스트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
금속이 팔을 움켜쥐는 감촉과 함께 파란 친구의 심상치 않은 목소리가 들리자 케이타는 움찔했다.
'왜…?'
허스크는 삼 초 동안 말이 없었다.
케이타는 불안할 때면 늘 놀랄 만큼 관찰력이 예리해졌다.
'전자석.' 카탈리스트가 말했다.
이제 그는 어리둥절했다.
'무슨 뜻이야?'
'근처 어딘가에서 신경 활동이 감지돼.' 카탈리스트가 더 설명했다.
케이타가 앞서 수없이 많은 질문을 쏟아 놓고도 그 사실은 알아내지 못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위험한 건지 알 수 있어?'
'확실하지 않아. 신경 신호를 저절로 밖으로 투사할 수 있는 건 파티고어, 허스크, 그리고 일부 인간뿐이야. 그중 우리에게 문제를 일으킬 건 첫 번째고.'
안심되는 말이었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안심과는 정반대였다.
걱정스러웠다.
카탈리스트가 뇌파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하자 케이타가 파란 친구를 끌고 둘 다 들어갈 만큼 넓은 옷장 안에 숨을 정도로.
케이타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좀처럼 진정할 수 없었다.
정체불명의 존재가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어서? 물론 아니었다.
당연히 카탈리스트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였다.
생각해 보면, 필요한 일이기는 했지만 무척 어색하기도 했다.
케이타는 붉어진 얼굴을 가려 주는 옷장 속 어둠이 몹시 고마웠다.
'이젠 또렷하게 들려…' 카탈리스트가 말했다.
'뭐인 것 같아?' 케이타가 속삭였다.
'파티고어. 틀림없어. 이렇게까지 사악함을 뿜어낼 수 있는 건 달리 없거든. 어쩌면 나 정도는 예외겠지만.'
'난 어떻게 해야 해???' 케이타가 말했다.
'넌 조용히 있어. 저건 내가 처리할게.'
둘은 기다렸다.
무거우면서도 나직한 발소리가 바깥의 카펫 위를 저벅저벅 가로질렀다.
그것은 공포를 몰고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것이 멈췄다.
옷장 손잡이가 오래된 관 같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돌아갔다.
케이타가 숨을 들이켤 틈도 없이 허스크가 예상치 못한 속도로 움직였다.
허스크는 문을 거세게 밀어젖혀 노란 짐승을 벽까지 튕겨 냈다.
케이타는 눈을 감았다.
소용없었다.
살점이 찢어지고, 가구가 박살 나고, 금속이 찌그러지는 소리는 여전히 고스란히 들렸다.
이윽고 그 불협화음이 잦아들더니, 천천히 타닥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케이타는 무엇을 보게 될지 두려워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의 광경에 토할 것 같았지만, 그는 참았다.
사방에 노란 덩어리들이 널려 있었다.
파티고어의 뾰족한 두 팔은 버려진 소방 호스처럼 바닥에 누워 있었다.
파티고어 자체는 머리에 일종의 창이 꽂힌 채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흉강에는 불이 붙어 있는 듯했다.
'뭐… 무슨 짓을 한 거야‽‽' 케이타가 경악하며 말했다.
'파티고어는 처음 보나 봐?' 카탈리스트가 말했다. '팔이랑 머리를 잘랐고, 지금은 안에 든 지네를 튀기고 있어.'
'뭐, 그러니까, 먹으려고??'
'응? 포빅 지네는 바싹 튀기면 맛있어. 적어도 미각이 있었을 때는 맛있었던 것 같아.'
“그건….” 케이타는 그 말을 꺼내는 것조차 두려운 듯했다. “동족포식 아닌가요?”
“아마도. 내가 이 별난 녀석들 전문가는 아니라서.”
“하지만 끔찍하잖아요!” 케이타가 외쳤다.
“당신이야 쉽게 말하지.”
“그건 대체 무슨 뜻이죠?”
“당신은 도시에 살잖아. 수도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에 먹을 거랑 물이랑 아이스크림이 산더미처럼 있고. 여기서는 먹을 수 있는 걸 먹든가, 아예 굶든가 해야 해. 철학적으로 따지면 동족포식일지도 모르는 존재들을 먹든가, 자기 다리를 먹든가. 근데 자기 다리를 먹는 건 못 할 짓이여. 그러면 걷는 속도가, 아니, 깡충거리는 속도라고 해야 하나, 암튼 반 토막이 나거든.”
케이타가 눈을 깜빡였다.
“어떻게… 어떻게 사투리를 쓰는 거예요??”
“아. 미안. 말하는 데 신경을 덜 쓸수록 점점 스코틀랜드 사람이 돼서.”
케이타는 한동안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서 파티족 튀김을 먹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카탈리스트가 천천히 물었다.
“음… 한번 먹어 볼까요?”
“그런데 조미료는 안 가지고 다녀서 좀 싱거울지도 몰라.”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뭐든 싱겁지 않죠.” 케이타가 사뭇 묘한 어조로 말했다.
카탈리스트는 그 말을 무시했다.
“좋아. 두어 시간 뒤면 다 될 거야. 천천히 익히는 거지, 뭐.”
둘은 한동안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체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죽은 거 맞아요?” 케이타가 은밀하게 물었다.
“죽으면 제대로 익지 않아.”
“아직 살아 있다는 거예요? 바닷가재처럼?”
“바닷가재가 사악하다면 그렇지. 그래, 더 사악하다면.”
둘은 조금 더 바라보았다.
“그럼 아직 소리가 들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텔레파시 중추에 단검을 꽂아 놨어.”
역병처럼 침묵이 내려앉았다.
둘은 기다렸다.
달리 할 일이 없자 케이타는 다시 컨베이어 벨트처럼 시시콜콜한 질문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카탈리스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딱히… 먹음직스럽지는 않네요.” 케이타가 자기 몫으로 받은 지네 튀김 반쪽을 노려보며 말했다.
“여기가 딱히 식당은 아니잖아.” 카탈리스트가 말했다. “어떻게 생겼든 음식은 음식이야.”
카탈리스트는 자기 몫의 반쪽을—물론 더 나은 부위는 케이타에게 주고 더 질긴 앞쪽 반을 챙겼다—집어 들어 공중으로 휙 던졌다.
카탈리스트에게 먹는 일은 어려웠다.
대부분의 허스크는 한 손으로 음식을 들고 다른 팔에 달린 입에 넣곤 했지만, 카탈리스트에게는 그런 호사가 허락되지 않았다.
튀긴 벌레가 가장 높이 떠오른 순간, 카탈리스트는 의수의 걸쇠를 허리에 달린 클립에 대고 딸깍 풀어 의수가 휙 젖혀지게 했고, 그 아래 이빨투성이 입이 드러났다.
능숙하고 조심스러운 동작과 함께 음식은 팔에 난 뾰족한 이빨 사이로 사라졌다.
케이타는 역겨워하기보다는 흥미로워하는 듯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그 낯선 고기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데?
카탈리스트에게 그렇게 말하자, 카탈리스트는 자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고만 했다.
갑자기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
케이타는 무엇이 눈에 들어올지 두려워하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 하나.
그저 뒤쪽에 제법 근사한 옷걸이가 달린 나무 문이었다.
아까는 분명 없었다.
“저기, 저 문 아까도 있었어요?” 그는 답을 알면서도 동행에게 물었다.
“없었던 것 같은데.” 카탈리스트가 경계하며 다가가 말했다.
카탈리스트는 창으로 문을 쿡 찔러 보았다.
문은 꿋꿋하게 나무로 남아 있었다.
움직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다른 도리가 없어 카탈리스트는 손잡이를 돌렸다.
문이 활짝 열렸다.
문턱 너머에는 한낮의 햇살이 환히 비추는 도시의 거리가 있었다.
케이타가 카탈리스트 뒤로 다가와 문틀 너머를 내다보았다.
“레벨 11 같은데….” 그가 확신하지 못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렇게 생긴 곳이 달리 많지는 않지.” 카탈리스트가 말했다. “내가 잘 알거든.”
“그럼, 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까.” 케이타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우리 집에 같이 갈래요?”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카탈리스트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케이타가 멈췄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상대는 아직 자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케이타는 카탈리스트를 끌고 다시 문을 넘어 미지의 레벨로 돌아가 벽에 밀어붙였다.
“젠장, 지금 당신한테 추파를 던지고 있잖아요!” 그가 외쳤다. “어떻게 아직도 눈치를 못 챘어요‽”
카탈리스트가 곧장 그를 밀어냈다.
“알아!” 카탈리스트가 대답했다.
“그럼 왜 안-”
“그냥 그럴 수가 없어.”
갑자기 두 남자 사이에 슬픔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저 외풍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케이타를 단숨에 입 다물게 하고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무슨 뜻이에요?” 그가 차분하게 물었다.
“앉아. 이야기해 줄게.”
케이타는 카탈리스트가 쓰러진 자리 옆 바닥에 앉았다.
“내 삶은 쉽지 않아.” 카탈리스트가 말문을 열었다. “정부 전체와 혼자 싸워야 하고, 여러 레벨을 오가며 작전을 벌여야 해. 그러는 동안 여러 요주의 단체한테 쫓기기까지 하지. 사교 생활에 좋을 리가 없어. 만나는 사람마다 내 생김새 때문에 나를 무서워해. 내 곁에 있으면 위험하다는 건 확실히 배웠어. 혼자 지내거나, 가는 곳마다 나를 따라오지 못한 사람들의 시체를 줄줄이 남기거나, 둘 중 하나야.”
“하지만 당신을 사랑해요.” 케이타가 말했다. “그건 아무 의미도 없나요?”
“당신이 처음은 아니야. 내가 살아 있을 때조차 연인들은 나 때문에 죽곤 했어. 다른 누구에게도 그런 일을 겪게 할 수는 없어. 그래서 당신을 모른 척했던 거야.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그들처럼 되는 걸 볼 수가 없으니까.”
케이타는 울고 있었다.
그는 카탈리스트의 푸른 몸을 꼭 끌어안았고, 그의 눈물은 카탈리스트의 옷에 영영 달라붙어 있을 듯하던 피를 씻어 냈다.
“당신이 혼자 지내는 걸 원하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세상에, 당신의 진짜 이름조차 모르는데 이렇게나 사랑하다니.”
“이제 내게 이름이 있는지도 모르겠어.” 카탈리스트가 침울하게 말했다. “남들이 붙여 준 이름은 잘못됐고, 내가 고른 이름은 나 혼자만 쓰거든.”
“그럼 그 이름이 뭔데요? 내가 불러 줄게요.”
“레지 로슨.” 카탈리스트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알아, 안다고. 좀 더 재미있는 이름을 고를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남들 눈에 띄고 싶지는 않아서.”
“아니에요, 아니야. 좋은 이름이에요.” 케이타가 서둘러 말했다. “난 마음에 들어요.”
둘은 한동안 말없이 껴안고 있었다.
“아직 입술이 있다면 좋을 텐데.” 레지가 아쉬워하며 말했다.
“내게는 아직 있어서 다행이네요.” 케이타가 말하며 레지가 아직 인간이었다면 입이 있었을 자리에 부드럽게 입 맞췄다.
그는 그 맛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당신한테서 핸드백 맛이 나요.”
“미안.”
침묵.
“그래서… 이제 뭘 하지?” 레지가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연락처라도 주고받아야 하나? 연애를 안 한 지 3년이나 돼서,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예의인지도 모르겠어.”
“아, 네, 좋아요.” 케이타가 휴대전화를 꺼내며 말했다. “번호가 뭐예요?”
“전화기는 안 써.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든.”
“아, 음… 이메일은요?”
“그건 물론이지.”
레벨 11은 카탈리스트에게 지루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위험 부담도 없었다.
엔티티 밀매를 제외하면 적대적인 엔티티에게 당할 위험도 거의 없었다.
출입구는 대부분 표시되어 있어서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일을 피하기도 쉬웠다.
거의 모든 물자의 공급망이 이곳에 있어 부족한 것도 거의 없었다.
장막 이편에서 가장 지루한 곳이었다.
물론 가끔은 와야 했고 테베는 언제나 좋은 표적이었지만, 오래 머무르는 건 한 번도 내키지 않았다.
카탈리스트는 케이타가 무슨 말로 자신을 설득해 이곳까지 데려왔는지 떠올려 보려 했다.
레벨 1조차 이곳보다는 재미있었다.
“거의 다 왔어요.” 케이타가 뒤에서 성큼성큼 따라오는 카탈리스트를 돌아보며 밝게 말했다.
“잘됐네, 자기.”
두 사람은 아파트 건물까지 거닐어 가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생각해 봤는데.” 레지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대체 무슨 일을 해? 직업 이야기는 한 번도 안 했잖아.”
“G.P.D.에서 일해요.” 케이타가 대답했다.
“좋네, 문서나 들여다보는 사람이군. 거기서 날 싫어한다는 건 알지?”
“왜요‽” 케이타가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물었다.
“그쪽 문서에 문제가 있으면, 관료적인 절차부터 밟는 대신 작성자한테 직접 이야기하거든.”
“아. 그 블랙리스트.”
둘은 다른 열두 개의 문과 비슷하게 생긴 문 앞에 도착했다.
“다 왔어요.” 케이타가 말했다.
그는 영 시원찮은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찾았다.
“잘됐네.” 레지가 말했다. “난 이제 가야 하거든, 자기. 미안해. 곧 보자.”
“당신이 그러려고 한 줄-” 케이타는 말하다가 멈췄다.
그의 푸른 연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 한 점 일으키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보낸 사람: 아이카와 케이타 — k.aikawa@backmail.bck 받는 사람: 레지 로슨 — admin@catalase.bck.cat 날짜: 1 Feb 2025
안녕, 레지.
잘 지내요오? 퇴근하거 집에 왓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메일을 쓰러 와써요. 제발 내게 도라와 줘요 🥺
따뜻게 안부를 전하며, 아이카아 케이타.
보낸 사람: 레지 로슨 — admin@catalase.bck.cat 받는 사람: 아이카와 케이타 — k.aikawa@backmail.bck 날짜: 1 Feb 2025
케이타, 난 당신 상사가 아니야. 그렇게 우스꽝스럽게 격식을 차려서 쓸 필요 없어. 오타까지 있으니 더 우스꽝스럽잖아.
아무튼 난 잘 지내는 것 같아. 언바운드는 여전히 날 잡으려 하고, 영원 너머의 복도는 늘 그렇듯 여전히 끝이 없어. 연옥도 얼마나 평범할 수 있는지 알면 놀랄걸. 당신은 어때?
보낸 사람: 아이카와 케이타 — k.aikawa@mail.net 받는 사람: 레지 로슨 — admin@catalase.bck.cat 날짜: 1 Feb 2025
아차차! 미안해요! 아직 눈치 못 챘을까바 말하는데, 지금 엄청 지쳐써요 😴
아무튼 보고 싶어요, 레지. 자꾸 베개 하나가 당신이라고 상상하개 돼요 💕
보낸 사람: 레지 로슨 — admin@catalase.bck.cat 받는 사람: 아이카와 케이타 — k.aikawa@mail.net 날짜: 1 Feb 2025
미안하지만 이러는 게 나아. 특히 당신한테는. 그리고 지금은 이메일 그만하고 자는 게 좋겠어
보낸 사람: 아이카와 케이타 — k.aikawa@mail.net 받는 사람: 레지 로슨 — admin@catalase.bck.cat 날짜: 1 Feb 2025
아니이이요, 난 갠차나요. 아직 깨어 이쓸 기운은 충분해요.
보낸 사람: 레지 로슨 — admin@catalase.bck.cat 받는 사람: 아이카와 케이타 — k.aikawa@mail.net 날짜: 1 Feb 2025
안 돼
보낸 사람: 아이카와 케이타 — k.aikawa@mail.net 받는 사람: 레지 로슨 — admin@catalase.bck.cat 날짜: 1 Feb 2025
돼요ㅛ.ㅔ
보낸 사람: 레지 로슨 — admin@catalase.bck.cat 받는 사람: 아이카와 케이타 — k.aikawa@mail.net 날짜: 1 Feb 2025
잘 자
보낸 사람: 아이카와 케이타 — k.aikawa@mail.net 받는 사람: 레지 로슨 — admin@catalase.bck.cat 날짜: 1 Feb 2025
흥, 알게써요, 그래요. 잘 자요오.
글쓴이
PrismaticMoose